충전기 근처만 가도 충전…“배터리 없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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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   조회수: 986 날짜: 2023-08-02본문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53〉 스카이칩스 이강윤 대표
반도체가 등장하기 전 라디오 같은 전자기기엔 진공관이 사용됐다. 하지만 전력소모가 크고 전력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다. 1947년 미국 벨 연구소에서 트랜지스터를 발명하며 반도체의 시대가 열렸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로 불리며 점점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반도체는 산업 지형도 완전히 바꿔놨다. 스마트폰·컴퓨터·TV·냉장고·자동차…. 반도체가 없는 전자기기를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지경이다.
반도체 패권 경쟁도 점점 심화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산업이고 앞으로도 폭발적 성장이 지속해서 일어날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국도 지난 5월 ‘반도체 미래기술 로드맵’을 발표하며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경쟁국보다 상대적으로 약했던 소자·설계·공정 등 3개 분야에 중장기적 지원으로 선도국을 넘어설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선 특정 제품을 위한 ‘다품종 소량생산’이 늘어나면서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fabless)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비접촉 전력 전송 반도체 개발
통신·전력·AI 기술 한군데 구현
제품 온도 자동측정 등에 활용
사물인터넷 등에도 적용 가능
스카이칩스를 창업한 이강윤 성균관대 교수는 전력·통신·인공지능(AI) 반도체 기술력을 바탕으로 팹리스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지난 26일 경기 수원시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에서 만난 이 대표는 “연구실 기반 창업인 만큼 한 세대 앞선 반도체 제품을 성공시키고, 국내 팹리스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며 “제자들이 ‘팹리스도 할 만 하구나’ 느끼고, 팹리스를 창업해 좋은 아이디어를 발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기장 활용해 전력 전송
“요즘 휴대폰을 충전기에 올려놓기만 하면 자동으로 충전이 되죠? 이는 자기장을 사용하는 방식인데, 휴대폰을 충전기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어요. 고속도로에서 하이패스 차량이 통과되면 자동으로 결제가 되듯, 휴대폰을 충전기 옆에만 둬도 자동으로 충전이 되면 얼마나 편리할까요. 전기장 방식을 활용해 충전기와 접촉하지 않고도 전력을 효과적으로 보낼 수 있죠. 배터리를 없애는 게 궁극적인 목표예요.”
스카이칩스는 뉴로모픽(인간 뇌 모방) 인공지능(AI) 기술을 결합해 근·원거리에서 전자제품에 무선주파수(RF)로 전력을 전송하는 무선충전기술을 개발했다. 전기가 필요한 기기를 AI가 찾아내 자동으로 충전시켜주는 기술이다. 최근 세계 여러 팹리스가 비접촉식 무선충전기술 개발에 나서고는 있지만, 뉴로모픽 AI 기술을 결합해 기술개발에 성공한 건 스카이칩스가 최초다.
이 대표는 “디바이스가 여러 개 있을 때 우선순위를 잘 조절해 전력을 쏴주는 게 비접촉식 무선충전 기술의 핵심”이라며 “인간의 개입 없이 사물들끼리 자율적으로 충전 우선순위를 정하고, 상황이 변하면 이를 인지해 충전 디바이스를 바꾸도록 하는 데 AI 기술을 활용했다. 전력·통신·AI 반도체를 한데 모아 구현한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현재 의약품·와인 등이 유통될 때 제품 온도와 상태를 측정하는 스티커, 마트 매대의 전자가격표(ESL) 등에 스카이칩스가 개발한 반도체가 활용되고 있다. 향후 스마트워치, TV 리모컨 무선 충전 등에도 적용 가능할 전망이다. 스마트워치를 손목에 찬 채 무선충전기 근처에 있기만 하면 자동 충전되는데, 충전시간은 5시간가량 걸린다. 충전시간이 1시간 내외인 접촉식 충전기보다 시간은 오래 소요되지만, 디바이스를 계속 사용하면서 충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대표는 “기술적으로는 더 높은 전력도 쏠 수 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전자파는 유해하다’는 부정적 인식 때문에 저전력 제품에 우선 적용하고 있다”며 “전자파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면 자연스럽게 전력소모가 큰 제품까지 적용이 확대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 회사에 투자한 노범석 피엔피인베스트먼트 부사장은 “전력 반도체와 통신 반도체 관련 기술을 블록화해 고객사 필요에 따라 레고처럼 조립할 수 있도록 맞춤형 개발을 하는 게 경쟁력”이라며 “방대한 데이터를 소형 서버에 분산해 처리하는 엣지 컴퓨팅 시장이 급속하게 커질 것으로 예상하는데, 스카이칩스가 이 분야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강점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김용석 성균관대 교수는 “비접촉식으로 충분한 전력을 공급하는 건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는데, 알고리즘 칩으로 무선충전을 성공적으로 구현한 게 경쟁력”이라며 “사물인터넷(IoT)의 경우 전력을 지속 공급하는 게 중요한데, 현재의 접촉식 무선충전보다 간편하고 효율적인 비접촉식 무선충전이 확산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스카이칩스는 현재 개발한 비접촉식 무선충전 반도체 기술을 스마트팩토리까지 확대하고, IoT의 핵심인 저전력 무선통신 기술을 지속 개발할 계획이다.
선배 창업자 성공 보며 ‘창업 꿈’ 키워
이 대표가 창업을 꿈꾼 건 대학원 재학시절 ‘선배 창업자’들의 성공을 직접 목격하면서다. 그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였던 정덕균 서울대 석좌교수는 1995년 고선명 멀티미디어 인터페이스(HDMI) 기술을 바탕으로 ‘실리콘이미지’라는 회사를 공동창업했다. 당시 컴퓨터 업계 양대 산맥이던 인텔과 컴팩이 표준모델로 채택하며 ‘대박’이 터졌다. 1999년 미국 나스닥에 상장됐고, 2015년 프로그래머블(FPGA) 반도체 기업인 래티스반도체가 이 회사를 인수했다.
그 뒤 1998년엔 연구실 선배들 주도로 통신용 칩 팹리스인 GCT세미컨덕터 창업 과정에 참여했다. 4세대(4G) 통신용 칩을 개발하며 2012년 매출액 1300억원을 달성했는데, 업계에선 ‘반도체 전설’이란 별명이 붙었다.
이 대표는 “GCT세미컨덕터에선 7년간 일하면서 설계부터 제품화 단계까지 많은 경험을 했다”며 “선배 창업자들을 보면서 직접 개발한 기술을 상용화하고 제품화하는 게 너무 익숙해졌다. 이 때문에 실무적인 연구를 통해 창업해야겠다는 꿈이 생겨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후 실제 창업에 나선 건 2019년에 들어서다. 그는 “산학 과제는 대부분 과제 기간이 정해져 있어 기간이 끝나면 후속연구를 하지 못하고 중단된다”며 “90~95% 정도의 결과가 나오면 기업체에 기술을 이전하고, 제품화는 기업의 몫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가능성 있는 연구를 조금 더 발전시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에 연속성 있게 결과를 내고 싶어 직접 창업에 나섰다”며 “‘박사 1호 제자’로 당시 삼성전자에 근무하던 부영건 박사를 설득해 연구소장으로 모시는 게 시작이었다”고 덧붙였다.
창업 후 가장 어려웠던 건 ‘버티기’였다. 일반적으로 팹리스는 제품 콘셉트를 잡아 설계하고, 제품화에 이르기까지 2~3년가량 소요되기 때문이다.
“반도체 분야는 특정 시기를 놓치면 기회가 날아가 버린다는 특징이 있어요. 팹리스 기업으로 고객사가 원하는 시기에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게 어려움이었죠. 교수는 95%의 연구 성과만으로도 논문을 쓸 수 있고, 연구 실패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아요. 하지만 회사는 다르죠. 나머지 5%를 채우는 게 더 중요합니다. 고객과의 약속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므로 부담감이 더 컸어요.”
그는 국내 반도체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선 인재육성과 노동시간 유연화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 대표는 “팹리스는 특히 진입장벽이 높다. 시장에서 필요한 좋은 기술을 개발해도 갖춰진 고객망이 부족하다”며 “국내에도 소규모 팹리스가 많은데,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해선 팹리스 간 협력할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팹 공정 비용이 굉장히 비싸다. 대만의 경우 TSMC가 대학에 무상으로 팹을 제공하고, 학생들이 이를 활용해 좋은 논문을 많이 만들어낸다”며 “최신 공정 트레이닝을 통해 탄탄한 설계능력을 갖춘 인력이 계속 배출되고, 반도체 산업 전반에서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는데 한국도 벤치마킹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반도체는 시간 싸움…유연 근무 필수”
이 대표는 또 “반도체 연구는 시간 싸움이고, 연구 초기엔 물리적으로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며 “52시간제 시행 뒤 시간적 제약으로 애로가 있었는데, 업종 특성에 따라 조금 유연하게 적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국가 연구개발(R&D) 지원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좀 더 유연하게 전략산업이 커나갈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했다.
“회사를 세우고 비즈니스를 위해 나이 50세가 다 돼 처음 골프를 시작했는데, 공은 항상 뜻대로 되지 않아요. 문득 연구원들과 제자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더군요. 골프를 칠 땐 고개를 들지 않는 게 중요해요. 학생을 지도하거나 경영을 할 때 마음가짐이 확 바뀌었어요. ‘항상 고개 들지 말고 겸손하자’라고요. 창업하자마자 단기간에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미국·이스라엘처럼 단기간에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다음 모델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문화가 생긴다면 국내 창업생태계가 확대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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